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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기획기사

[특별 기획] 3회 : 마라톤 42.195km의 비밀

2026-07-20 16: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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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력과 목표에 맞는 거리를 선택해 달리는 것이 진정한 가치 -

기자에게 달리기는 오랫동안 ‘넘지 못했던 벽’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만 다가오면 어머니는 “올해는 1등 한번 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매년 6명이 뛰는 달리기에서 기자의 성적은 늘 3~4등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단거리 달리기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100m 기록은 또래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빨리 달리지는 못했지만 오래 달려도 별로 지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첫 체력검사에서 1000m를 3분에 주파했다. 100m를 약 18초의 일정한 페이스로 10번 이어 달린 셈이다. 당시 체력장 만점 기준이었던 3분53초를 훌쩍 앞서는 기록이었다. 뒤따르던 2등 학생과는 운동장 트랙 한 바퀴 가까이 차이가 났다. 고등학교 3학년 개교기념일 하루만에 열렸던 10㎞ 단축마라톤과 1000m 달리기에서 2관왕에 올랐다. 오전에 10km를 달리고, 오후에 1000m를 달렸었다. 이후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프로그램 운동을 하면서 대구시민 참여 3.1절 단축 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었다. 운동회에서 한 번도 1등을 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아쉬움은 장거리 달리기를 만나면서 비로소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장거리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나도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준 계기였고, 지금도 삶을 지탱하는 자신감이 되고 있다.

 

부산국제마라톤대회는 하프, 10km, 5km 종목으로 진행된다. 자신의 체력과 목표에 맞는 거리를 선택해 달리는 것이 생활스포츠의 진정한 가치이다.

 

마라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숫자가 있다. 42.195㎞. 자동차를 타고도 제법 긴 거리다. 처음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한다. “왜 하필 42.195㎞일까?” 40㎞도 아니고 45㎞도 아닌, 어딘가 애매한 이 숫자에는 뜻밖의 역사가 숨어 있다. 마라톤이 처음부터 42.195㎞였던 것은 아니다.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열린 첫 마라톤은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 경기장까지 약 40㎞를 달리는 경기였다. 고대 그리스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종목이었지만 정확한 거리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후 올림픽에서도 개최 도시의 도로 여건에 따라 40㎞ 안팎에서 조금씩 다른 거리로 경기가 치러졌다.

변화의 계기는 1908년 영국 런던올림픽이었다.

당시 조직위원회는 출발 지점을 왕실이 머물던 윈저성 잔디밭으로 정했다. 어린 왕자와 공주들이 선수들의 출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결승선 역시 런던 화이트시티 스타디움 안에 마련됐는데, 마지막 지점은 국왕 에드워드 7세 가족이 앉아 있던 왕실 관람석 정면으로 옮겨졌다.이렇게 출발과 결승 위치가 조정되면서 거리는 26마일 385야드, 즉 42.195㎞가 됐다.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도란도 피에트리가 선두로 경기장에 들어섰으나 탈진해 5번이나 쓰러진 뒤, 경기 관계자의 부축을 받아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이유로 실격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의 조니 헤이즈가 2시간 55분 18초의 기록으로 최종 금메달을 획득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에도 이 거리가 곧바로 국제 기준이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런던올림픽 이후에도 스톡홀름, 안트베르펜, 파리올림픽에서는 개최 여건에 따라 마라톤 거리가 조금씩 달랐다.

 

도란도 피에트리는 경기 막바지 놀라운 스퍼트로 앞서 나갔지만, 당시 섭씨 35도를 웃도는 폭염과 탈진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경기장 트랙에 들어선 후 방향 감각을 잃고 여러 차례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대회 관계자들이 그를 일으켜 세우고 부축하는 바람에 실격처리되었다. 경기 직후 그의 투혼에 감명받은 영국의 알렉산드라 왕비는 특별 금메달을 수여하며 위로를 전했다.

선수들의 기록을 공정하게 비교하려면 동일한 기준이 필요했다. 결국 국제육상경기연맹은 1921년 42.195㎞를 공식 마라톤 거리로 채택했고, 1924년 파리올림픽부터 전 세계 마라톤 대회가 이 거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국제 표준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흔히 “영국 왕비가 아이들에게 출발 장면을 보여주려고 거리를 늘렸다”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당시 왕실의 요청과 경기장 운영상의 필요가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보는 것이 맞다. 출발과 결승 위치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거리가 만들어졌고, 이후 국제 표준으로 굳어진 것이다. 생각해 보면 2.195㎞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마라톤에서 40㎞를 달린 뒤 맞이하는 마지막 2.195㎞는 육체보다 정신력이 더 중요한 구간이다. 많은 마라토너가 “진짜 마라톤은 40㎞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몸은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마음은 한 걸음 더 내딛으라고 자신을 다독인다.

 

2025년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완주후 기념메달을 들고 밝게 웃고 있다. 달리기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빠르게 달리느냐보다 얼마나 끝까지 달릴 수 있느냐에 있다. 어린시절 운동회에서는 빛나지 못했던 기자가 장거리 달리기에서 자신감을 찾았듯, 마라톤은 수많은 사람에게 기록보다 더 큰 성취를 안겨준다.

어쩌면 기자가 어린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달리기의 진짜 가치는 얼마나 빠르게 달리느냐보다 얼마나 끝까지 달릴 수 있느냐에 있었다. 운동회에서는 빛나지 못했던 아이가 장거리를 통해 자신감을 찾았듯, 마라톤은 수많은 사람에게 기록보다 더 큰 성취와 자존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마라톤의 의미는 42.195㎞라는 숫자에만 있지 않다. 세계 각국에서는 풀코스뿐 아니라 하프마라톤과 10㎞, 5㎞ 대회가 함께 열린다. 자신의 체력과 목표에 맞는 거리를 선택해 달리는 것이 생활체육의 새로운 문화가 됐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에게는 5㎞ 완주가 큰 성취이고, 꾸준히 훈련한 사람에게는 10㎞나 하프코스가 새로운 도전이 된다.

오는 11월 다대포에서 열리는 제28회 부산국제마라톤도 하프코스와 10㎞, 5㎞ 종목으로 시민들을 맞이한다. 중요한 것은 42.195㎞를 달렸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거리를 끝까지 달리는 일이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느끼는 긴장과 설렘, 그리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기쁨은 거리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온다.

다음 회에서는 우리나라 마라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우승부터 서윤복, 황영조, 이봉주로 이어지는 한국 마라톤의 영광, 그리고 시민 마라톤 문화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살펴본다.

 

부산국제마라톤대회 포스터이다. 포스터에 담긴 인물들은 역대대회 참가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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