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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기획기사

[특별 기획] 4회 한국마라톤 100년

2026-07-20 16: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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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함께 달린 영광의 발자취-

한국 마라톤의 역사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일제강점기의 설움 속에서도 달렸고,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섰으며, 올림픽 정상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수많은 국민은 마라톤을 통해 희망을 보았고, 선수들은 한 걸음 한 걸음으로 한국 스포츠의 역사를 새로 썼다.

그 시작에는 손기정 선수가 있다.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 스물네 살의 청년 손기정은 2시간29분19초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인류최초로 2시간 30분의 벽을 넘어선 쾌거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달려 있었다. 일본 국적 선수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조선의 현실 때문이었다.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인 그의 모습은 사진을 통해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다. 우승의 기쁨보다 나라를 잃은 슬픔이 더 컸기 때문이다. 훗날 동아일보가 사진 속 일장기를 지워 실었다가 신문이 정간되고 관계자들이 탄압을 받은 ‘일장기 말소 사건’은 우리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손기정의 금메달은 단순한 올림픽 우승이 아니었다. 나라 없는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은 2시간29분19초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광복 후 한국 마라톤은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47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 서윤복 선수가 우승했다.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국제대회 정상에 오른 첫 한국 선수였다. 광복 이후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계 최고 선수들을 제친 그의 우승은 일제 강점기를 지내며 힘겨웠던 국민에게 감동을 안겼다. 서윤복의 뒤를 이어 함기용도 1950년 보스턴마라톤을 제패하며 한국 마라톤의 저력을 세계에 알렸다. 1897년부터 시작된 보스턴 마라톤대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마라톤 대회다. 한국 선수들이 잇달아 이 대회를 제패한 것은 세계 육상계에도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후 한국 마라톤은 오랜 침체기를 겪었다. 세계 육상은 빠르게 발전했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한동안 올림픽 시상대는 멀어 보였다.

 

1947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 서윤복 선수가 결승선으로 들어오고 있다. 서윤복 선수는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국제대회 정상에 오른 첫 한국 선수였다.

다시 국민을 열광하게 만든 주인공은 황영조 선수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황영조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 결승 약 2㎞를 남긴 몬주익 언덕에서 승부를 걸었다.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와 나란히 달리던 그는 마지막 오르막에서 과감한 스퍼트를 시작했고, 끝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손기정 이후 56년 만에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목에 건 순간이었다. 지금도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그 장면은 기자에게도 평생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새벽 생중계를 지켜보며 몬주익 언덕을 힘겹게 치고 올라가던 황영조의 발걸음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따낸 감동만은 아니었다. 한계를 넘어서는 인간의 의지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한 편의 드라마였기 때문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와 나란히 달리던 황영조 선수가 마지막 2km를 남긴 몬주익 언덕 오르막에서 과감한 스퍼트를 시작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마라톤의 인기는 이봉주 선수 시대에도 이어졌다. 이봉주는 화려한 스타보다 성실함으로 기억되는 선수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은메달을 비롯해 보스턴과 도쿄 등 세계 정상급 마라톤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40대가 될 때까지 현역으로 달리며 보여준 끈기와 성실함은 많은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마라톤. 결승선을 향해 달려들어오던 이봉주 선수가 환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당시 현장에서 셔터를 누르고 있던 기자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봉주 선수의 역주는 한국 마라톤의 저력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장면으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한국 마라톤의 역사를 돌아보면 공통점이 있다. 화려한 환경보다 강한 의지였다. 손기정은 나라를 잃은 설움 속에서 달렸고, 서윤복은 변변한 훈련 여건도 없이 세계를 제패했다. 황영조는 끊임없는 훈련으로 올림픽 정상에 올랐고, 이봉주는 성실함 하나로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오늘날 한국 마라톤은 예전처럼 세계 정상에 자주 오르지는 못한다. 아프리카 선수들의 강세와 세계적인 경쟁 속에서 기록의 벽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마라톤의 의미는 오히려 더 넓어졌다. 이제 마라톤은 엘리트 선수만의 무대가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시민이 5㎞와 10㎞, 하프마라톤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기록보다 완주를 목표로, 경쟁보다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는 11월 다대포에서 열리는 제28회 부산국제마라톤도 이런 흐름을 이어간다. 출발선에는 첫 레이스에 나서는 시민도, 가족과 함께 달리는 참가자도, 자신의 최고 기록에 도전하는 러너도 함께 선다. 비록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달리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결승선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손기정과 황영조의 도전 정신과 다르지 않다.

한국 마라톤 100년은 메달의 역사만이 아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한계를 도전으로 바꾼 시간이었다. 그 역사는 오늘도 운동화를 신고 길 위에 나서는 평범한 시민들의 발걸음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 마라톤 100년은 메달의 역사만이 아니다. 그것은 절망을 희망으로, 한계를 도전으로 바꾸며 달려온 시간이었다. 그 100년의 역사는 오늘도 운동화를 신고 길 위에 나서는 평범한 시민들의 발걸음 속에서 새로운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다. 매년 11월 부산 다대포에서 열리는 부산국제마라톤대회는 28년째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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